1 st solo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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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8.29-9.4.  백송화랑, 서울

섬, 山과 바위의 영상

 

섬, 산과 바위의 영상(image)은 서로 교차되는 동질성을 가진다. 이, 자연 풍경같은 대상이 추상과 재현의 한계를 넘어서 저 멀리 존재할 수 있다. 조형성과 상징성이라는 예술적 요소보다는 철학적인 시간과 공간을 작품을 通해서 표현하고자 이 작가는 의도한다. 원래 조각은 추상조각도 그 조각이 놓여진 공간은 실제공간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림의 추상성과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석고작품의 경우 연필로 석고판에 가해진 음영의 표현은 그림과 조각의 경계를 넘어선 자유로움이 있다.

조형적으로는 자유로운 기하학적 형태의 결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硬質>의 다소 기하적성격의 입체구성의 성격을 띄었으나 부드러운 자유곡선이 <유연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또한 구상적인 人物 조각과 이 다소 추상적인 섬 풍경이 結合되어 무리없게 共存함을 본다. 추상과 구상을 구별하던 세대와 달리 보다 더 융통성 있고 즐거운 영상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에 이경희는 속한다.

조각과 회화적 기법과의 화해 또한 그런 세대에서 볼 수 없던 현상이다. 세계주의에서 벗어나 <유럽미술>에의 회귀를 말하는 유럽인들과 구별되는 <동양미술>이라는 큰 문화권의 특성을 되찾는 일이 동양의 미술가들에게는 필요한 것 같다. 추상과 구상, 조각과 회화의 한계선을 넘나 드는 자유에 더하여 서양과 동양의 한계를 넘어서서 <개성>있는 작가로 성장하는 일이 중요할 것 같다.

<섬>이라면 동해의 거친 물결속에 섬이 아니라 변산반도의 또는 지중해의 고요한 바다위에 섬이라고 생각해본다. 섬은 물론 바다의 물결위에 암벽을 생각게 한다. 그러나 섬은 물속에 잠긴 山의 정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쨋던 섬은 서양에서 상징적으로는 정적과 평화를 연상시키며 또 다른 세계 –미래를 의미하며, 그 색채는 근본적으로 (白色) 이다. (영국의 옛이름은 Albio(白色)이다. 섬은 현대에 와서 <피난처>, 풍요한 섬을 찾는 것은 문학적 주제 중에 하나이다.

이경희의 석고 또는 대리석 작품은 조각으로서 먼저 조형적 작업이며, 요설(饒舌)이 없는 단단한 구조를 가지면서 유연성을 잃지 않았다. 게다가, 시간과 공간의 의미는 다분히 불교적인 명상성이 향기처럼 조각에서 풍기는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절대적인 정적(靜寂)찾을 수가 있는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 하얀색 섬들같은 어떤 조각들은 뵉크린의 <죽엄의 섬>같은 고요가 둘러쌓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열반에 도달한 자가 볼 수 있는 섬같다고나 할까,

섬이라는 주제는 신선한 발상이며 의미깊은 조각이라고 생각된다.

 

1990년 8월 정병관(미술평론가)

2nd solo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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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4.18-5.20.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중앙대학교미술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 동시설치

3 rd solo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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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9.12-9.18.   모인갤러리, 서울

화랑공간이 일상생활과 예술작품을 격리시켜 놓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최근에는 화랑공간 밖의 공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해오고 있었다. 이번 모인 화랑에서의 설치 작업도 화랑 밖의 공간을 안으로 끌어 들여보고 또 화랑 안의 작업을 밖의 공간으로 확장해 보고 싶다는 나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아크릴 박스로 인체 크기의(170센티)의 구조물을 만들고 그 안의 관람객의 모습을 모니터 상으로 실시간 투영하는 것이다. 화랑 안에 들어서면 제일 처음 투명한 구조물이 서 있고 그 구조물과 겹쳐져 있는 스크린에 화랑 밖의 모습이 계속 중계된다. 그 구조체 안에 관람객이 들어서면 화랑 밖 창문안의 컴퓨터 모니터 상에 그 구조 체가 너라고 하는 글자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비추어 진다. 따라서 “너” 속에 있는 “나”의 모습이 제 3자인 관람객에 의하여 읽혀지는 것이 이 작품의 완결이 된다.

 

2001. 9. 12. 이경희

4 th solo show 

2003. 8.5-8.12.   롱 갤러리, 뉴캐슬대학, 영국 

뉴캐슬대학의 미술대학정문에서 스튜디오를 가기위해서 안전경고만을 위해 만들어 놓은 일곱 개의 육중한 문을 거쳐야만 했다. 너무나 익숙해서 보이지 않는- 일상속에서 우리가 갖고 살아가는 수많은 내적, 외적 장치들이 어떻게 공간을 점유하는지, 또 그 공간이 어떻게 우리의 지각과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지 함께 얘기해보고 싶었다.

 

2003. 08. 이경희

 

To get from the front gates of Newcastle University to the Studio that I was using, I had to get past 7 heavy doors, none of which had ann use other than to warn, I wanted to talk about how inner and outer devices we are so used to having that we are no longer conscious of their existence, actually determine the space we live in and how such space acts to shape us.

August, 2003 Kyunghee Lee

5 th solo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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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12.17-2006. 12.17.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 삼방 3길 11호

철암동 삼방 3길 11호 집의 한 부분을 치워내고 정리를 시작했다. 뒷뜨락에 버려져 있던 각목과 판자를 가지고 앞마당에 조형물을 하나 만들어 세우고 허물어진 담벼락 사이를 황토와 시멘트를 섞어 개어 메꿨다. 뜯겨나간 어수선한 벽지들을 정리하고 그 위에 바닥이 보이도록 흰페인트도 엷게 칠했다. 바닦을 쓸어내고 낮고 넓은 창 앞에 의자를 하나 만들어놓고 앉으니 저탄장을 부지런히 오르내리는 차들과 푸르게 덮어놓은 천만의 빛깔이 꼭 시간 속을 유영하는 미니어쳐들 같다. 창밖으로는 저탄장과 선탄장이 가득하고 건너편 마을도 손에 잡힐 듯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일제식 건축물인 것으로 보아 칠 팔십년은 족히 되었을 이집을 일년여에 걸쳐 차근히 들여다 보며 조각작품도 만들어 놓고 그림도 그려 붙이고 벽도 수리하고 바닥미장도 해 보려고 하낟.

철암동 아이들이 숨바꼭질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마을 분들이 모여 차를 마시며 마실도 다닐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생각하고 있다.

 

2005. 12.19. 이경희

6 th solo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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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3.9-2006. 3.21.  거주(Habitation) 사디스페이스 갤러리, 서울

7 th solo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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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5.14-2008. 5.20.   모란 갤러리, 서울

8 th solo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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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8.2. -2008. 9. 2.  할 전시공간(구와우),  태백

9 th solo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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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7.17. -2009. 7. 26.  담갤러리, 서울

오십의 나이는 시간을 통찰한다. 아니 시간의 흐름을 들여다보는 나이다.

무엇을 봐도 시간의 흐름이 보인다. 고여 있는 우물 안을 들여다 보듯 사람 속에서 대기 속에서 나무와 철판들 속에서도 시간의 켜가 보인다. 그것이 또 장막처럼 나와 대상사이에 끼어들어 어느 것에도 올인 할 수 없도록 훼방을 놓는다.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 미래와 과거 사이에서 기억들이 박재된 이미지가 되어 그러나 그렇게 무겁지는 않게 중첩한다.

하여, 이번전시는 무엇을 만든다기 보다 만들어지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만들고 그랬다.

 

작가노트 中

10  th solo show 

KakaoTalk_20210723_160711256.jpg

2010. 3.3. -2010. 3. 7. Koran Art Show in New York, 뉴욕

11  th solo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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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6. -2019. 1. 11.  사드 자구울 뮤지엄, 이집트

12 th solo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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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2. -2020. 6. 11.  이목화랑, 서울